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7년 청소년보호법 파동 (문단 편집) == 만화계의 저항 == 이에 만화계 역시 일제히 반발했다. 7월 15일에 PC통신 '만화수호연합'이 첫 성명서를 낸 것을 시작으로 29일에는 한국만화가협회, 우리만화 발전을 위한 연대모임(현 사단법인 우리만화연대) 등 9개 만화 관련 단체들이 모여 만들어진 '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한 범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'는 <정부의 '만화 탄압'에 대한 범만화인 성명서>를 냈다. 이 성명서를 낸 다음날에 해당 회의의 대표자들이 검찰에 항의 방문을 갔으나 담당 검사는 바쁘다고 하면서 이를 따돌리기도 했다. 한편 만화평론가 [[손상익]]이 원장으로 있었던 한국만화문화연구원은 기관지 <코코리 뉴스레터> 4호 표지에 5.18 당시 계엄군의 구타 사진에 만화책을 합성한 사진을 싣는 한편 <공권력의 만화탄압을 거부한다>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. 7월 31일에는 <[[Mr.블루]]([[세주문화사|세주문화]])>, <빅 점프([[서울문화사]])>, <매주만화(트루패밀리)[* 원래는 <[[주간야구(잡지)|주간야구]]>의 자매지였다.]>, <투엔티 세븐([[대원씨아이|대원]])> 등의 격주간 [[상업지|성인]]용 [[만화잡지]]들이 시한부 발행 중단[* 해당 잡지들은 하반기에 복간했지만 [[Mr.블루]], 매주만화, 투엔티 세븐은 1998년, 빅점프는 2000년에 각각 폐간되었다.]을 선언함에 따라 연재 작가들의 절필 선언이 뒤따랐고 8월 2일부터 이틀 간 비대위 측은 서울 신촌, 종로, 대학로 등 세 개 지점에서 공권력의 만화 탄압에 반대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해 1만 4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. 이후 공권력과 만화계의 반발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아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이 사태를 통해 만화계가 주장한 창작자유의 보장 등의 문제 등은 어떠한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